농촌 교회와 농산물 직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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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교회와 농산물 직거래
사과, 사과즙, 대봉감, 감말랭이, 마늘, 산양삼 청, 꿀, 프로폴리스, 쌀, 생강청, 양파 여주즙, 고춧가루, 김부각, 오징어 부각, 풋고추, 알밤, 황토 구운 소금, 참기름, 들기름 등등 경남 함양에서 트럭 2대와 승합차 1대에 아홉 분이 타고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우리 교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였습니다.
시골교회 목사님, 사모님, 집사님, 80세가 넘으신 집사님 부부 외 젊은이 몇이 트럭 2대에 농산물을 가득 싣고 오셨습니다.
부교역자들이 총동원하여 텐트를 설치하고 물건을 내리고 탁자 위에 품목별로 정리하여 가격표까지 써 붙였습니다.
순식간에 그럴듯한 장터가 되었습니다.
네댓 시간 달려오실 때는 물건이 다 팔리면 좋겠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자란 경험을 되새겨 보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봄철 되면 땅을 파야 하고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농약을 뿌려야 하는 등 끝없이 관리하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만날 수 없습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 새벽 일찍 논밭에 나가 한나절 일을 하고 돌아오시면 아침 식사하고 또 나가 일을 하셨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땀을 많이 흘려 벌게진 얼굴로 들어오셔서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점심 드신 후에는 모정에 가셔서 깊게 아주 깊게 오침을 하셨습니다.
수확한 나락 가마니를 리어카에 싣고 공판장에 나가 등급을 받습니다.
검사원이 대꼬챙이로 가마니 옆구리를 찔러 나락을 꺼낸 다음 건조 상태와 나락(벼) 굵기 등을 파악한 후 까만 도장을 가마니에 꽝 찍습니다.
그렇게 나락(벼) 가마니를 팔면 두툼한 지폐가 손안에 쥐어집니다.
그 돈으로 먹고살고 학교 다니고 옷 사 입고 용돈 받아 살았지요.
농촌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기계가 발달하여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할 뿐, 일하는 것은 고스란히 농부의 몫입니다.
‘목사님, 저 대봉 한 박스 3만원 받는데, 공판장에 가면 7~8천원밖에 못 받심니더’ 가격이 하락할 때는 팔아야 손해나기 때문에 수확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논밭에서 썩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은 그런 농부들을 보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 저분들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궁리 끝에 도시 교회 목사님들에게 부탁하면 대부분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당하는데 ‘보배로운교회 목사님께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렇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송스럽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합니다.
맞절을 하고 손잡아 드렸습니다.
손이 거칠거칠합니다.
몰로카이 나환자 섬으로 간 데미안 신부가 연상되었습니다.
나환자들만 모여 사는 그곳에 아무도 가지 않지만, 벨기에 데미안 신부는 자원하여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지만 냉대를 당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몸에도 문둥병이 들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데미안 신부 몸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온몸에 고름이 생겨나고 살이 썩어 들기 시작합니다.
시력도 점점 약해집니다.
그는 자신이 나환자가 된 것에 감사하며 환자들에게 다가가 치료해 주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제서야 환자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굵은 주름 속에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는 목사님을 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많이 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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