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찌 이런 일이!
페이지 정보
본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기도회를 위해 4시30분쯤 교회 에 도착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하신 두 분 권사님(임금순, 송화자)은 벌써 교회 불을 환하게 밝혀 놓고 청소기를 돌려대며 강단 청소를 하시고, 한분은 창문을 닦고 계단을 쓸고 계신다.
다른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감쪽같이 정리해 놓고 조용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보배로운지 말로 형언하기가 어렵다. 어머니같은 연세이시니 어떤 날은 ‘권사님’ 하고 부르고서는 꼬옥 안아주는 때가 있다.
인사를 하고 내 사무실로 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오래전 목회컬럼의 주인공이었던 잉꼬 새장이 곤두박질쳐져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다가가보니 이미 새는 보이지 않고 빈 둥지만 덩그렇게 놓인 채 바닥에는 모이와 물이 쏟아져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둑고양이의 짓이 틀림없다. 며칠 전부터 계단에 수상한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쳤더니 결국은 그 놈이 새장을 떨어뜨리고 새를 물어간 것이다.
매일 먹이를 주고 신선한 물로 바꿔주면서 아직도 주인을 몰라보는 놈이라고 흉을 보았던 게 미안해진다. 빈 새장만 제자리에 올려놓고 새벽기도회를 마쳤는데 갑자기 귀에 익은 잉꼬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얼른 나가보니 그 중 한 마리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재빨리 물과 모이를 넣어주고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 둘러보았지만 허사였다. 결국 한 마리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먼발치에서 보노라면 둘이서 날개 짓을 하고 부리를 부벼대면서 사랑의 세레모니를 나누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들 소리를 오래 듣고 보니 사랑의 소리와 다투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사랑의 소리는 그 소리가 아름답고, 부드럽다. 두 마리가 막대기에 걸터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주고받는 사랑의 대화이다.
그러나 어떤 날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좁은 새장 안에서 쫓고 쫓기는 사랑싸움을 하는 때도 있다. 부부간에 다투는 소리는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앙칼지고 매섭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 종일 시간이 흘러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끔 들여다보면 무척 외로워 보인다. 모이도 물도 줄어들지 않는다.
혹시 한 마리가 새장을 탈출하여 산으로 날아가서 살고 있다면 이 녀석도 같이 날려주어야 하나? 혹 살아있다면 이짝의 소리를 듣고 가까이 올 텐데 그러지 않은 걸보니 필시 고양이에게 변을 당하게 틀림없다. 불쌍하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이 녀석을 재혼 시켜야 하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는 전 노대통령 참모의 말이 생각난다.
상황 변화에 민감했더라면 사전에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마귀라는 놈이 미워지는 건 왜일까?
마귀라고 하는 놈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틈을 타고 들어온다.
어떤 경우에는 화나는 일로, 혹은 짜증나는 일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으로, 남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의 틈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의 소중한 믿음과 은혜를 도둑질해 간다. 일단 은혜를 도둑맞고 나면 노래(찬양)가 사라진다. 감사도 기쁨도 사라지고,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스스로 시험에 빠진다.
그러므로 마귀가 틈을 타는 것을 잘 막아야 한다.
깨어있으면 눈치를 챌 수 있다. 내 믿음은 내가 지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