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가는 날
페이지 정보
본문
이른 아침부터 아내의 손길이 부산하다. 주방에서 죽을 쑤고, 불고기를 재고, 이것 저것 챙기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오늘은 아내가 친정가는 날, 사실은 어제 저녁 늦게까지 장을 보고 준비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추석 명절에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늦었지만 부모님을 뵙고 오려고 하는 것이다. 해마다 달라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는 달마다 달라지심에 조급한 마음이 든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가는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나누면서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자주 찾아 뵙자고 다짐해 본다.
고향을 찾아 내려가는 고속도로 주변으로는 벌써 황금들녁을 이루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그려보니 세월의 빠름이 보인다. 희뿌연 회색지대에 봄이 오니 파릇 파릇 싹이 돋아 푸른 세상이 되었다가 이제는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머지않아 하얀 눈이 세상을 덮는 시간이 오겠지. 색깔의 변화속에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자리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는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시고 떨리는 팔을 지탱하며 일어나 앉으신다. 지난 봄 어버이날에 뵙던 모습에서 또 달라졌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동네 할아버지들의 모습, 눈의 힘이 풀리고 손 발은 떨리며 허리는 구부정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지팡이를 짚고서도 비척거리던 그 분들의 모습이 아버지 모습속에서 한꺼번에 보여 마음이 아프다.
한때 천국 문 앞까지 가셨던 어머니는 오히려 건강을 되찾아 아버지를 돌보고 계신다. 한 시절 북적대며 키웠던 6남매는 각지에 뿔뿔히 흩어져 제 살기에 바쁘지만 이제 남은 두분은 서로 정신적 동반자가 되어 하루 하루를 보내시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다시기에 죽을 쑤어왔지만 이럴 때 바깥 바람이라도 쐬시는 것이 좋겠다 싶어 외식을 권하니 흔쾌히 받아들이신다. 두 노인만 생활하니 바깥 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차에 우리의 권유에 힘을 내어 일어나신다. 얼마나 걷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시내 구경을 하고 싶으셨을까, 마음이 울컥해진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여기 저기 도시의 작은 변화를 읽어내신다. 태어나시어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계시니 간판하나 달라지는 것도 금새 아신다. 좁은 방에 누어만 계시다가 시내에 나오니 찬 바람에 두뇌회전이 되시나 보다. 이제 보고나면 또 언제 볼 수 있나 싶으신지 여기 저기 깊이 살피신다.
하고 싶어 상추와 깻잎에 잘 익은 장어를 싸서 입에 넣어 드린다. 이제는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는다 하시는데도 아내는 이번 한번만, 이번 한번만 하면서 서너 쌈을 더 올린다. 부모님이 우리를 그렇게 키우지 않으셨던가, 먹기 싫다는데도 한 번만 더 하시면서 키우셨던 것을 이제 똑같은 방법으로 그 사랑을 돌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식사를 맛있게 하시고서도 ‘식비가 많이 나올텐데....’ 하시며 우리 살림을 걱정하신다.
마음 먹으면 올수 있는 것을, 시간 쪼개면 이렇듯 뵐 수 있는 것을, 핑계가 참 많다.
아버지 마음속에 꼭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응 그래’ 쇠약해지시는 육체속에 영혼의 탄생을 알리는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다시 확인할 날을 속히 잡아야겠다.
- 이전글너는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08.10.04
- 다음글생각을 통해 오는 기도응답 08.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