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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만의 만남

    페이지 정보

    조회Hit 997회   작성일Date 08-05-1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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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머리 까진 놈, 배 나온 놈, 백발이 된 놈, 도인같은 놈, 농사꾼 같은 놈, 말쑥한 신사차림의 놈, 30년만에 만난 고교 동창들의 모습이다.
    몇 달 전부터 문자에 이메일에 편지와 전화까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번 동창회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반 공갈 협박에 못 이겨 고향을 방문하였다.
    그렇잖아도 내심 이번 동창회에는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체가 모이는 동창회에는 그 동안 한 번도 참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원 지역 동창모임이 자주 있었지만 모임의 성격과 분위기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무와 요일이 겹쳐 몇 번 밖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동창들을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넉두리가 좋은 편도 아니며 술좌석에 마주 앉아 담배연기 맡아가며 한 두시간 앉아 있는 것이 고문당하는 것 같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 사람이 쓸데있는 얘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가서 듣고 있노라면 정말 쓸데없는 얘기만 오간다. 시간이 흘러 술이 꽤나 들어가기 시작하면 정말 가관이다. 별스런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 사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 자리가 세상과 사회를 배우는 학교인 셈이다.
    이제 막 50대가 된 사회인들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된다. 직장생활의 애환과 장래에 대한 걱정, 사업의 어려움과 가정 살림에 대한 염려 근심을 술을 마시며 풀어버리고 싶은가 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 남자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지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겠다.

    연회장에 들어서니 이미 도착한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30년전 그 모습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친구도 있고,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서 이름표를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이들도 많다.
    30년전 촌놈들 빡빡머리에 얼굴은 햇볕에 타서 거무틱하고 키는 멀대처럼 자랐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모습속에서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졸업 후 나를 처음보는 애들도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다 하니 이해가 된다. 그때 나는 177cm 키에 체중은 60kg 정도였으니 지금의 나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서로 서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야, 너 오랜만이다” “야, 너는 하나도 안변했구나” “너는 정말 못 알아보겠다, 길에서 보면 모르겠다” 장내가 떠들썩하다.
    일찍 도착하신 은사님들이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계셨다.

    고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3학년때 담임선생님도 오셨다. 그 외 선생님들까지 약 10여분이 오셨다. 이름표를 보여드리며 꾸벅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들의 기억력은 정말 대단하시다. 그 이후 수 많은 학생들을 길러내셨을텐데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실까, 한문을 잘 쓰던 것, 공을 잘 차던 것, 심지어는 부친의 당시 근황까지........ 선생님들의 기억은 놀라웠다.

    이게 제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인가,
    약 2년전, 고1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 캐나다에 이민가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회 장로님으로 음악 선생님이셨던 그 분께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그때 남학생 합창단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목사가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며 오히려 전화주어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캐나다에 놀러 오라시며.....

    내빈 중 한분이 눈에 쏙 들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교육장이 되셔서 동창회를 축하차 참석하신 것이다. 얼른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역시 그 분께서도 나를 한눈에 못 알아보신다. 이름표를 보시고 나서야 ‘네가 류철배냐?, 아니 네가 정말 류철배냐,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몰라보겠다’ 시며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나를 많이 보고 싶어하셨단다.

    그 분은 당시 초임으로 오셔서 우리 담임 선생님이 되셨었다. 당시 반장이었던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야단을 맞은 기억도 생생하다.
    선생님도 열정이 앞서 아이들을 많이 때렸다며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이들 교육은 매가 아니라 오직 사랑이라고 강조하신다. ‘그게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웃으시며 그렇다고 하신다.
    그 분은 물론 같은 면내 출신이시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 내력까지 소상하게 알고 계셨다. 그럴수록 얼굴이 화끈거림을 피할 길이 없었다. 선생님은 이토록 제자를 만나고 싶어하셨다는데 나는 바빴다는 핑계로 참 무심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초등학교 5학년때이니 38년 전 그때의 내 얼굴을 찾아보시려는 듯 선생님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신다. 어엿한 중년의 나이에 관록깊은 제자 목사의 얼굴을 보시며 찰라적으로 많은 생각에 잠기신다. 술잔을 권했지만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음료수 병을 찾아오시어 한잔 따라 주신다. 스승이시면서 제자 목사에게까지 예를 갖추어 주신다.

    30년 전,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니면서 전도지를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시큰둥하게 받아 넘겼던 선생님이 이제는 안수집사님이 되셨고, 어떤 친구는 장로, 어떤 친구는 안수집사, 집사 등등 많은 친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아는 척을 한다. 그때 전도지를 나눠줬다는 사실이 그들 기억속에 있거나 없거나 그건 상관없다. 지금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주께서는 전도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고 이 모임에 참석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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