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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치마를 두른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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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Hit 1,019회   작성일Date 08-05-31 20:55

    본문

    앞치마를 두른 목회자

    주일날 점심때가 되면 교회 식당은 북새통을 이룬다.
    장소가 비좁고 보니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
    예배 후 길게 늘어서서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다. 좀 복잡하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면서 함께 식사 공동체를 나누는 성도들의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 다른 교회를 탐방해보면 교회 식당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사면이 확 트인 넓은 공간에 고급스런 식탁과 의자, 그리고 센스있게 올려 놓은 앙징스런 한 송이 꽃까지 모든 게 부럽기만 하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식당을 잘 꾸며 놓았다. 그런 공간을 볼 때마다 ‘우리교회는 언제 이렇게 되나~’ 하는 시샘이 들기도 한다.

    사실 여기 보다는 주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복잡하다.
    배식하는 팀과 설거지하는 팀이 좁은 공간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불편하지 않다. 점심을 먹는 인원이 점점 늘고 보니 식사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설거지 및 뒤정리하는 일들이 장난이 아니다. 연약한 여성들의 몸으로는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식사 인원이 적을 때는 옴지락 꼼지락하며 나름대로 재미있는 봉사였지만 이제는 수 백명이 몰려드니 기쁨의 봉사가 아니라 중노동에 해당되는 사역이 된 셈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저런 하소연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며 지나왔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침묵시위든, 아니면 촛불시위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여전도회에서 회의가 열리고, 남선교회에서 회의가 열리고, 목회자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이제 주방 봉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는 것이 의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땜질 봉사를 해 왔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각 기관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또 회의를 했다. 현재의 시설과 환경으로는 별 뾰족한 수가 없기에 회의 할 때마다 회의감이 들지만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모임을 통보했다. 결론은 식사 준비는 권사회에서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는 여성 셀로 돌아가면서 봉사하되, 설거지 및 뒷정리는 힘 드는 일이니 안수집사들이 먼저 하고 나중에는 남성셀로 가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무리를 지으면서 그러면 그 첫 번째 봉사는 목회자들이 먼저 하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주일날이면 여기 저기 교육부서에서 사역해야 하고, 예배준비 및 진행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목회자들이지만 한번 쯤은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견을 내 놓았는데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는다. 사실 목회자들이 설거지 봉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누군가 반대 의견을 내 놓았을때 그 마음이 고맙다, 하지만 봉사는 우리가 하겠다고 나설 줄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반대로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목사님들이 설거지하면 교인들이 은혜받지요, 감동먹지요’. 그러면서 대 찬성이다. 사실 이런 수고하고 봉사하는 일일수록 목회자들이 먼저 앞장 서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래서 자연재해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담임목사인 내가 먼저 그 곳에 달려가서 봉사하고 온 적이 많이 있다. 말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몸으로 실천하자는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 회의 때 의견을 내 놓았다. 주방 봉사에 이런 문제들이 있는데 우리가 먼저 봉사하자 라고 제안을 했는데 모두가 기쁨으로 받아주는 것이다. 후배 목회자들이 고마웠다. 그렇게 하여 5월 첫 번째 주일날 점심 주방 봉사는 목회자 팀이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를 하였다. 대부분 군대를 갔다 온 경험을 살려 얼마나 힘있게 열심히, 그리고 깔끔하게 봉사를 하는지 성도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봉사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속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기쁨은 받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데서 오는 것임을 깨닫는 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