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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김동식 목사

    페이지 정보

    조회Hit 1,137회   작성일Date 07-05-04 21:32

    본문

    사람이 태어나는 환경도 제각각이지만 죽는 환경도 천차 만별이다. 노인들의 소원이 있다면 ‘9988234’라고 한단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정도 누워있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소원이라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 교통사고로, 병사로, 불의 사고로, 혹은 피격으로, 테러로, 때로는 자살로, 등등 죽음의 형태가 다양하다.
    역사상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면 본인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사람들의 시기, 질투와 죄값 때문에 대신 죽은 경우일 것이다. 그것도 가장 극악무도한 강도를 처형하는 방법대로 죽은 사람이 있다면 가장 억울하고 비참할 것이다.
    그런 죽음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피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속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의 죽음 이후 헤아릴 수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 분처럼 죽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죽어갔다. 우리는 이런 죽음을 ‘순교’라고 일컫는다.
    ‘순교’란 국어 사전적 의미로는 ‘모든 압박과 해를 물리치고 자기의 믿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이라고 되어 있다.
    며칠 전 공식적으로 ‘김동식 목사 순교’라고 보도가 되었다.
    그 분은 순교하신 것이다. 그 분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의 몸을 이끌고 동서남북을 누비고 다니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었다. 납북 당하기 전에 그는 직장암 수술을 했다. 대부분 암 환자들의 경우 수술 후에는 회복기간을 거쳐 항암 주사를 맞거나 약물 투여를 통해 2차 전이가 되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만 한다. 의사는 최소 5년 동안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병원을 찾아가 위로하는 내 손을 붙들고 ‘빨리 일어나야 탈북한 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텐데’라며 그들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 후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탈북자들을 관리하다가 납북되고 이후 1년만에 순교를 했다는 소식이다.
    2000년 1월 사건이니 벌써 7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살아있기를 위해 기도하고 그 분이 생존해 돌아왔다는 꿈도 여러 번 꾸었던 것 같다. 국제적으로 혹은 국내 인권 단체를 통해 구명 운동이 많이 있었지만 정부에서는 납북된 인사들에 대한 구명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며칠 전 방송에도 해외 여행을 하는 한국민이 여행중에 당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대사관을 찾아가 호소를 하지만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할 뿐이라면 대한민국의 자국민 보호정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개탄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데는 혈안이 되어있고, 고관대작이 되는 데는 사투를 벌이지만 정작 그 자리를 차지하면 국민의 주권과 인권에 대해서는 ‘모르쇠’가 되어 버린다.
    우리 정부의 그런 후진국 수준의 정책인줄 알면서도 그 분은 불속에 뛰어 들어가 탈북한 주민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고 나온 것이다.
    12년 전 북경에서 그 분을 만나 잠시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정책과 사상을 떠나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그 분의 열정은 장애를 극복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찾아 다니며 사정을 하고 때로는 애원을 하여 얻어낸 물질과 물건들을 그들을 위해 토해 내 놓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겼던 분이다.
    그 분의 선교사명은 ‘허기원’이다. 허드슨 테일러의 ‘허’ 주기철 목사의 ‘기’ 손양원 목사의 ‘원’ 이라는 글자를 따서 스스로 자기를 ‘허기원’이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의 초기 사역을 알고 있는 분들은 ‘허기원’이라는 이름이 본명인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분은 자기의 젊음과 열정과 사랑을 다 쏟아내어 북한을 사랑했던 분이다. 지난 95년 미국 아틀란타 올림픽때는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가서 온갖 예산을 끌어내서 직접 그들과 함께 숙식을 대접하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때 만났던 ‘계순희’ 역도 선수를 딸처럼 사랑했던 분이다. 그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했던 분이다. 어느 해에는 우리 교회에 오시어 북한을 다녀온 얘기를 들려 주었다.
    북한 어느 지역 시장을 거니는데 어디선가 낯 익은 선율이 흘러와 발걸음을 멈췄단다.
    가만히 듣고 보니 길가에 쭈구리고 앉아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으면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라는 찬송을 부르고 있더란다.
    그 분은 발걸음이 얼어 붙는 것처럼 제자리에 멈춘 채 쭈구리고 앉아 말도 못하고 할머니 손을 덥썩잡았는데 눈물만 글썽 글썽, 할머니 눈을 쳐다 보는데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할머니는 이 분을 빤히 쳐다 보더니 남이 들리지 않도록 아주 목소리로 ‘목사님이시죠’ 하더란다.
    이 분은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 끄덕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며 전해 주었다.
    ‘순교’ 주님을 위한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
    90kg 이상되는 거구가 35kg이 되어 운명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문과 때림이 있었을까,
    북한을 위하여 애쓴 것을 인정하여 사상을 전향하면 살려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그 분은 십자가의 채찍을 받은 채 순교를 하신 것이다.
    중국을 품었던 허드슨 테일러처럼, 일제 시대 기독교를 품었던 주기철 목사처럼,
    6.25 동란의 총부리 앞에서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던 손양원 목사처럼,
    그 분은 그렇게 그 길을 갔다.
    주님, 험하고 모진 통일의 날을 그리며 사랑의 피를 쏟아냈던 김동식 목사의 영혼을 위로하소서. 주께서 가라는 곳으로 앞만 보고 달려갔던 그의 영혼을 보듬어 주시고 위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