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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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05-07-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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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인 아들이 자퇴를 하였다.
학교를 안가면 큰일 나는 줄로 알고 자랐던 나와 아내로서는 대단한 결정을 했다 싶다.
이제 고1, 대학 입시를 향하여 서서히 불을 달궈 야할 때인 중요한 시기에 자퇴를 하고 보니 주변 에서 의아해 하는 눈치들이다. 굳이 자퇴했노라 말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학교 있어야 할 시간에 교회에 나타나고, 두발이 덥수룩하게 덮이는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한다는 보수층은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못하고 있나, 아니면 문제를 일으켰나,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속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나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다만 먼 인생길을 가는데 1년쯤은 쉬어가며 좀더 실속있게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의 결론인 셈이다.
요즘 아이와 갖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단은 새벽 예배에 참석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후에는 아빠와 아들이 영어 성경을 읽고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한다. 아이는 자기의 비젼을 놓고 기도하고 아빠는 아이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한다.
가끔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청명한 뒷동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대화를 하고 함께 땀을 흘리고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한다. 2,3년전만 해도 아이와 달리기를 하면 내가 멀찌감치 도망치곤 했는데 이제는 어림도 없다. 아빠 키를 훌쩍 넘어버린 아들의 떡대가 훨씬 크다. 반바지 차림을 하고 보면 내 종아리는 소년 다윗 같고, 아들 다리는 거장 골리앗 같다. 오랜만에 축구를 하고 보면 내가 차는 공은 중간에 톡 떨어지는데 이 녀석이 차는 공은 쉭- 소리를 내면서 대포알처럼 날아간다. 먹는 것을 보면 나는 겨우 공기 밥 하나면 포만감을 느끼는데 얘는 어림도 없다. 수박 반통을 혼자 끌어안고 싹싹 긁어 먹을 정도이다.
이제는 체격면에서는 째비가 안된다.
그래도 기도할 때는 아이는 방바닥에 무릎 꿇쳐 놓고 나는 소파에 높이 앉아 기도해 준다. 아이가 어려서 품에 안고 다녔을 때, 손을 마주잡고 아장 아장 걸어 다녔을 때를 제외하곤 이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또 다른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비록 몇 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가 또 언제 있겠는가, 더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와 함께 했던 이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할 것 같다.
지난주에는 아이와 함께 은퇴하신 노 교수님댁을 방문하였다. 그 분은 은퇴 후에 더 많은 일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분이었지만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셨다. 몇 시간동안 자리하며 아이의 장래를 위해 이런 저런 길을 안내해 주시는 모습에서 이번에는 뽑히는 수염의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첫 대면이었지만 “상락아, 너는 좋겠다. 너는 참 행복한 아이로구나” 하시며 들려주시는 비젼 속에서 아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아빠는 너의 터전을 일궈 줄 뿐이다. 그 위에 집을 세우는 일은 너의 몫이다. 큰 집을 잘 세우면 너의 자녀들이 그 안에서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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