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로고

보배로운교회
로그인 회원가입
환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배로운 교회

  • 환영합니다
  • 인사말·목회칼럼
  • 목회칼럼
  • 목회칼럼

    하나님 나라의 보배로운교회

    엄마의 그리움

    페이지 정보

    조회Hit 1,069회   작성일Date 04-09-24 22:52

    본문


    얼마전 엄마를 그리는 마음으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그 날 차창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은 엄마의 품처럼 따사로왔습니다.
    농사지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들녘은 언제나 먹을 것을 챙겨주시던 엄마의 손바닥처럼 여겨지고, 멀리 바라보이는 봄꽃들의 화무는 엄마의 마음처럼 하늘거렸습니다.
    전날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깨끗했습니다. 나를 품에 안고 바라보시던 엄마의 눈처럼, 그렇게 3시간 동안 자동차를 달려 고향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꼭 32년전 일입니다.
    그 해는 엄마가 돌아가신지 3년째, 새로운 무덤으로 이장하기 위해 가묘를 열고 이미 썩어버린 관 뚜껑을 제쳤을때 그곳에는 한줌의 흙으로 변해버린 무서운(당시에는) 유골만 앙상하게 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묘를 이장한지 32년, 엄마의 묘는 또 이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첩첩 산속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될 줄이야 그때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양지 바른 곳이 명당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묘비를 세웠지요.
    그때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이던 필자를 학교 결석을 시키고 그 자리에 참석을 시켰습니다.
    그때의 충격과 인생에 대한 허무함은 성경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어엿한 중학생이 된 아들의 손을 잡고(학교 결석을 시키고) 그 자리에 참석을 시켰습니다.
    내가 받았던 그 충격을 똑같이 유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군들의 손 놀림속에 엄마의 유골은 32년전과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명당자리였다고, 그러니 아들이 목사가 되었다고, 자손들이 편안하게 잘 산다고들 뇌아립니다.
    유골을 안장하는 아저씨는 힘들다느니, 편안하게 잘 모셔야 할텐데느니, 정성을 다하고 있다느니,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함으로 웃돈을 바라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지폐를 한 장씩 새 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내 손가락에 마주 깍지를 끼고 서있는 아들 녀석의 얼굴을 훔쳐 보았습니다.
    그때 중학생과 지금 중학생의 느낌이 어떤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할머니의 얼굴도, 사랑도 모르는 이 아이는 그때 나처럼 신기한 듯, 호기심일 듯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안장되는 유골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갑자기 흐려집니다.
    사물이 겹쳐보이더니 어릴적 엄마의 품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내 기억속에 한번도 건강한 적이 없으셨던 엄마,
    언제나 목이 찢어질 것처럼 장이 끌려올라오기라도 할 것처럼 해댔던 기침,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 자주 진한 고름을 짜내시던 아버지의 아내 사랑,
    선반위에 올려져 있던 엄마의 영양제인 에비오제를 몰래 하나씩 꺼내먹었지,
    약한 몸으로 마흔살에 나를 낳으셨으니 얼마나 애지중지하셨을까,
    힘이 없으셨나 한번도 야단을 치지 않으셨던 엄마,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글씨 쓰기 연습을 시키시고 친척에게 편지를 받아쓰게 하셨지,

    엄마의 사랑은 40년 세월에도 흐려지지 아니하고 내 속 어디엔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니 둥실한 분봉하나가 생겼습니다. 엄마의 새로운 집입니다.
    잔디가 잘 살도록 꼭꼭 밟아주었습니다. 행여나 그늘이 져서 잔디가 죽을까 나뭇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옮겨 놓은 石床을 물로 깨끗이 씻어 냈습니다. 엄마가 나를 씻어 주었듯이,
    흙은 흙으로 돌아가고 엄마의 사랑은 생명으로 내 속에 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