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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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 & 말고의 귀를 붙여주신 예수님
몇 달 전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일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면서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서울 소망 교회 목사님의 설교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가 사순절 기간이었던 것 갔습니다
설교 말씀 중간에 듣게 되어 본문 말씀은 잘 모르지만 유다가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자른다는 내용의 설교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설교 말씀을 듣던 중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다는 말씀을 들은 이후로는 제 귀에 설교 말씀은 들어오지 않고
왜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을 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나머지 설교 말씀은 잘 듣지를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잘 알고 저도 잘 아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왜 잘랐을까를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을까
그리고 베드로는 어부 출신이데 어떻게 단 한번에 말고의 귀를 잘랐을까
일본 무사 사무라이 출신도 아닌데
그리고 어떻게 왼쪽 귀도 아니고 오른쪽 귀를 잘랐을까 귀를 잘랐어도 정황 상 말고의 귀를
자른다 해도 왼쪽 귀를 자르는 것이 정상일 것 같은데 베드로가 칼을 잘 쓰는 칼잡이도 아니고
베드로가 칼을 사용해 봐야 배에서 고기 잡아가지고 회 칼로 회 쳐먹을 일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궁금한 것
예수님께서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말고의 귀를 붙여 주실 엉뚱한 생각을 하셨을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시면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상황 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행하시던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앞으로 수제자인 베드로가 담당해야 할 일 이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제자들도 하겠지만
그런데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자른 사건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수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첫째 – 베드로가 진짜 칼로 말고의 귀를 자른 경우
지금은 말고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밑에서 귀가 막혀 복음을 들을 수 없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나왔지만
말고도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긍휼한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말고를 불쌍히 여겨 천국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아닌지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언젠가 말고도 귀가 열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제사장의 비 진리의 길인 대제사장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진리의 길인 예수그리스도의
길로 가지 않았을까요?
말고가 지금은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해 진리이신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던 사람들을 붙잡아 죽이고 핍박했던 사도 바울이 회개하고 진리의 길로 돌이킨 것 같이 말고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귀가 없다는 것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도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른쪽 귀를 베드로가 잘라으니 베드로드 참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까지도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 오른쪽에 있는 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7-4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떨어진 말고의 귀를 부쳐 주셨던 것 아닐까요?
말고를 구원하기 위하여
둘째 – 베드로가 가짜 칼로 말고의 귀를 자른 경우
여기서 가짜 칼이라고 했는데 가짜 칼로는 무우도 벨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짜 칼은
진리의 칼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비 진리의 칼 = 이 세상의 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617-:)
베드로는 예수님을 삼 년 반 동안이나 숙식을 하며 따라 다닌 제자 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옆에서 직접 들었고 수많은 기적과 이적도 보았고 변화 산에서 직접 모세도 엘리야도 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예수님의 총애를 받으면서 특혜를 받은 제자입니다
볼 것 안볼 것 다 보면서 예수님을 따른 제자 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끌어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자른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예수님 대신 베드로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다고 가정 할 경우
베드로가 진짜 칼로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라서 참 진리인 말씀을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만들었듯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베드로가 설교를 하게 될 경우 베드로가 하는 설교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귀를 칼로 자를 수도 있다는
즉 복음을 막는 행위 복음을 방해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암시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해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진짜 칼(성령의 검)을 잘 쓸 수 있었던 때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마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마자 베드로가 맨 처음으로 한 일은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면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맨 처음으로 한 일은 고향에 내려가 감추어 놓았던 고기배로 고기 잡는 일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21:3)
그러면 베드로가 언제부터 진짜 칼(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잘 쓰는(제대로 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베드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 즉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의 일입니다
이날 베드로가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자가 삼 천명이나 되었습니다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36-42)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하루에 삼 천명이 구원 받는 사건과는 아주 대조적인 사건이 구약 출애굽기에서 일어났습니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출32:28)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 판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있을 때 일어났던 사건 입니다
출 애굽하여 금송아지를 만들며 우상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삼 천명이 사망 사건이 1500여 년이 흐른 뒤
베드로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삼 천명의 영혼이 구원 받는 사건입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전 인류가 사망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해 전 인류가 구원 받는다는
암시적인 사건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16-)
종합해보면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다는 것은
말고의 귀를 자를 때 베드로는 아직 성령을 받기 전 상태 입니다
그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귀를 마치 칼로 자르는 행위와 같다는 뜻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난 후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 칼로 귀를 할례를 받는 행위
복음의 칼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욕으로 듣는 답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렘6:10)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때려 죽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1-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육체의 할례는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와 마음에 할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귀를 할례 받는 것이며 마음을 할례 받는 것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 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롬2:28-29)
그러면 무엇으로 할례를?
성령의 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1-13)
베드로가 칼로 말고의 귀를 잘라 복음을 들을 수 없도록 하였듯이
사람이 하는 말과 이 세상의 말 들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고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붙여 주셨듯이
성령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우리들의 귀를 열어 줍니다
칼(이세상 말)을 잘못 쓰면 칼로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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