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서를 통해 본 구원과 심판의 날 하루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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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를 통해 본 구원과 심판의 날 하루 “내일”
유다인들이 오늘(13일) 대적들을 칼로 쳐 도륙하고 진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에9:5~6)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왕후 에스더는 만족하지 않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내일(14일)도 오늘(13일)과 같이 왕의 조서대로 대적들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 청합니다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에9:13)
유다인들이 대적자들을 죽일 때 칼을 사용합니다 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죽였다고 해도 되는데 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냥 칼이 아닌 창이나 몽둥이 철퇴 돌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굳이 칼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6:17~20)
유다인들이 대적자들을 칼로 도륙하고 진멸 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들의 육신의 생각을 죽이는 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들의 육신의 생각이 죽고(사망) 그들의 영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육신의 생각이 죽고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을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라 생각 합니다 성경은 그들을 계시록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20:5~6)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해달라 청하는 것은
내일도 오늘과 같이 즉 매일 매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의 조서(복음)을 전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이 많게 하겠다는 말씀으로 생각 해 보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에스더 사건 후 약 500여 년이 지난 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간접 화법이 아닌 직접 화법을 사용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6~8)
에스더가 왕에게 청할 때 “내일도 오늘같이” 라는 말을 하지 말고 그냥 내일도 대적들을 진멸하게 해 달다고 해도 되는데 굳이 “내일도 오늘같이” 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이 말 속에도 엄청난 뜻이 숨어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내일도 유다인들이 대적들을 죽이게 허락 해 달라는 말의 참 뜻은 내일 하루만 대적들을 죽이고 말겠다는 말 속에는 단발성 즉 하나님의 복음을 내일 하루만 전하겠다는 1회용으로 끝난다는 뜻은 아닌지 그러나 에스더가 말한 “내일도 오늘같이” 라는 말의 참 뜻은 이 세상이 끝나는 즉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 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2500여 년 전에 죽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건지 궁금하시죠 그래서 에스더서가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2500여 년 전에 에스더가 전한 복음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 복음이 우리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내일도 복음이 전해 질것입니다 언제까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은 쭈-우-욱 전해 질것입니다
에스더 9장 18절 말씀을 보면 유다인들이 십삼 일과 십사 일에 모였고 십 오일에 쉬며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 라고 기록 되어 있고 19절 말씀에는 유다인이 모여 아달월 십사 일을 명절로 삼고 잔치를 베풀며 서로 예물을 주고 받았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 일과 십사 일에 모였고 십오 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 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서로 예물을 주더라”(에9:18~19)
유다인들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놓고도 떳떳하게 마지막 셋째 날 인 십오일 날 어떻게 잔치를 베풀고 즐겼는지
저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심심해서 이 삼일 이라는 날짜들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13일은 유다인의 대적자인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로 한 날짜입니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에3:13~14)
그러나 이날은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인들이 구원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들은 죄에서 구원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둘째 14일은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십삼 일 자신들이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고 그 기쁜 소식을
즉 복음을 이웃과 함께 서로 모여 교제하며 나누고 전하는 날(오늘날의 교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라는 말은 예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골2:3)
이들이 주고 받은 것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는 뜻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주고 받으며 교제함
셋째 15일은 앞으로 오실 주님의 날 즉 예수그리스도 재림의 날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모형을 볼 수 있는 것이 BC1500여 년 출애굽 당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명령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출19:10~11)
여기서도 오늘과 내일 옷을 빨며 성결하게 하고 셋째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에 강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셋째 날은 아직 우리에게 이르지 않은 날입니다 우리는 이 셋째 날을 기다리며 어제도 오늘도 날마다 자신의 옷을 빨며 성결하고 정결하게 준비하며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달월 입니다 아달월은 유대 달력으로 12월을 뜻합니다
12월은 1년의 마지막 달 입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들이 깊이 잠드는 추운 겨울 입니다
사람 살아가는 것이 다람쥐 체 바퀴 도는 것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했던 일 내일 또 하고 올해 했던 일 내년에도 또 하고
올 1년이 지나면 다시 내년이 오고 올 봄이 지나면 또 내년 봄이 다시 오고
사람들의 인생이 이 일년 열두 달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인생은 결국 이일년 열두 달이라는 체 바퀴 속에서 돌고 도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12라는 숫자 속에서 되풀이되는 연속된 삶을 살아갑니다 12월이 지나면 1월이 시작되고 다시 12월이 돌아오고 우리 삶의 마지막 날도 역시 이 일년이라는 날들 중에 한 날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몇 십년 아니면 백 년을 산다 해도 결국은 이 일년이라는 날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종말 장이라고 하는 마태복음 24장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19~24)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도망할 때가 겨울이 되지 않게 기도하라”
12월은 1년의 마지막 달이면서 겨울입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아달월 역시 12월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를 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즉 심판의 날에도 젖을 먹고 있는 자 그리고 아이를 밴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젖을 먹고 있다는 말씀은 교회는 다니는데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30년이 지나도 믿음이 신앙이 자라지 않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며 아이 밴 자들이란 교회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부지런히 먹여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도록 해야 하는데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도 교회 안에서 품고 있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 경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3~15)
저는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에9:13)라는 말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하루가 지나가면 어제가 됩니다
내일이라는 날은 하루가 지나가면 오늘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내일이라는 날은 사실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 날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있을 1분 아니 1초 후의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이라는 날은 우리가 영원히 볼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날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제라는 날은 죽은 자들의 날입니다
어제 죽은 자들은 오늘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이라는 날은 살아있는 자들의 날입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내일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일이라는 날은 살아있는 자들의 날도 죽은 자들의 날도 아닙니다
내일이라는 날은 신의 날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날입니다
지나간 어제는 염려하지 마세요 어제는 죽은 자들의 시간 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1~22)
그리고 내일도 염려하지 마세요
내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내일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아무 염려 하지 마시고 기도 하세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여기서 “내일이” 이라는 말을 좀 자세히 잘 보세요
저는 이 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도 깜짝 놀라셨죠?
내일이라는 글자에 “이”자가 붙은 것입니다 이 “이”자라는 글자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글자 입니다
(예: 부모님이, 사장님이, 저분이, 형님이 ~하실 거야)
예수님께서는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은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이 염려할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제가 어디에서 이런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두 날(오늘 내일)만 염려하지 않으면 평생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 이었습니다
제가 맨 처음 이 말을 들을 때는 이 말에 동의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에 동의 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염려해야 할 날은 오늘 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염려하지 마세요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의에 길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면 내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내일)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6~7)
어제 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이 삼 일을 아는 자들은 가만이 있지 못할것입니다
이 삼 일을 아는 자들은 참 하나님의 복음의 나팔(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불게 될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복음의 나팔을 불 때에 에스더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말씀)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에9:22)
어제도 지나고 오늘도 가고 주님의 날인 진짜 내일이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고 약 20여 년이 지난 후 온 세상에 기근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갔다가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 요셉을 보고 기겁을 하며 깜짝 놀라던 것 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것이라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예수님을 대충 대충 믿는 사람들(땅에 있는 자들)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땅 아래 있는 자들)이나 예수님 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그날에는 이 세상 의 모든 자들 모두가 깜짝 놀라 정말 예수님이 계셨었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다시 깜작 놀랄 것이랍니다 그리고 곧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서 마지막 날(15일)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저는 이 날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국 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암시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날은 곧 이 세상 마지막 날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에스더서에는 잔치만 있지 심판의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에스더서에는 마지막 날 믿는 자들의 기쁜 구원소식만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에 대한 부분은 감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에스더서와 스바냐서를 함께 보면 마지막 날 구원과 심판에 대한 경고를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에스더서와 스바냐서를 합해 놓은 것이 신약의 계시록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삼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계산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 민수기를 보면 가나안을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14:34)
그런데 신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심심해서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심심해서 한번 생각 해보았습니다
혹시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라고 쓴 베드로의 이글이 베드로가 심심해서 쓴 글이 아니라면
그리고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라는 이 글이 하나님이 계산하는 계산법이 맞는다면?
예수님께서 이 천년 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돌아 가신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일 째 날입니다
그럼 큰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후에 부활 하셨습니다
집에 잠깐 갔다 온다던 예수님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깜깜 무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잠깐 갔다 온다는 이 말을 믿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은 곧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곧 오신다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라는 하나님의 계산법이 맞는다면
잠깐 집에 다녀 오신다는 그 잠깐이 혹시 지금 삼일 째인 오늘 날이 아닌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던 노아의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때 보다 지금이 더 악한 시대가 아닌지
노아의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는 가장인 아버지가 곧 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족사회 씨족사회인 그 때 한 마을의 어른은 곧 법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가차 없었습니다 가문을 위해서 그래서 죄가 발 붙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인터넷도 스마트 폰도 없었습니다 야동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참 오 - 래 참으시고 계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의 날 (베드로 후서3장)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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